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노스텔지아》(Nostalgia, 1983)**는 그리움, 정체성, 영적 갈등을 중심으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영화입니다. 타르콥스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망명과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줄거리에는 영화의 핵심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영화의 배경과 줄거리
**《노스텔지아》**는 러시아의 시인이자 작가인 안드레이 고르차코프가 이탈리아로 연구 여행을 떠나면서 겪는 내적 갈등과 영적 여정을 그립니다. 안드레이는 18세기 러시아 작곡가의 발자취를 따라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을 여행하지만, 이국적인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소외감을 느낍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현지인 도메니코를 만나고, 도메니코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불을 든 채 성스러운 길을 건너야 한다고 믿습니다. 안드레이는 도메니코의 광기와 신념에 매료되며, 자신의 내면에서 이탈리아와 러시아라는 두 세계 사이의 갈등을 겪습니다. 영화는 결국 안드레이가 도메니코의 희생적 행위를 계승하며 영적 구원과 자기 희생의 의미를 탐색하게 됩니다.
2. 주요 주제 분석
1) 노스텔지아: 그리움과 상실의 감정
영화의 제목 **‘노스텔지아’**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안드레이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고향에 대한 강한 향수를 느끼며, 이국적 아름다움에 몰입하지 못합니다. 이는 타르콥스키의 개인적 경험과도 연결되는데, 타르콥스키는 이 영화 제작 당시 실제로 소련을 떠나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향 상실의 고통을 깊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안드레이의 내적 갈등은 단순히 물리적 고향의 그리움이 아니라, 자신이 잃어버린 정체성과 영혼의 일부분을 향한 갈망을 의미합니다.
2) 이분법적 갈등: 고향과 이국, 신성과 광기
안드레이는 러시아의 전통과 신앙을 고수하고자 하지만, 이탈리아라는 이질적 환경은 그에게 영적 혼란을 줍니다. 이 영화는 타르콥스키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이분법적 갈등을 강하게 다룹니다.
고향 vs. 타지: 고향은 영적 안정과 본질적인 자아를 상징하고, 타지는 이방인의 소외와 정체성의 혼란을 의미합니다.
이성 vs. 광기: 도메니코는 미친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가 제시하는 신념은 인류의 구원과 영적 각성을 향한 강렬한 외침입니다.
신성 vs. 세속: 도메니코의 행위는 신성한 희생으로 보이기도 하고, 세속적 광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타르콥스키는 이를 통해 인간의 신앙과 불신 사이의 모호함을 탐색합니다.
3) 희생과 영적 구원
도메니코는 영화의 중심적인 상징적 인물로, 세상으로부터 미친 사람으로 낙인 찍히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행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도메니코는 로마의 한 광장에서 스스로 불을 붙여 희생하는데, 이는 자신의 신념을 세상에 전하려는 절박한 몸부림이자, 인류의 각성을 촉구하는 행위입니다.
도메니코의 희생은 영적 순수성의 상징이며, 안드레이가 그의 신념을 계승하려는 시도는 인간이 자신의 내면적 갈등과 두려움을 넘어 영적 구원을 찾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4) 인간의 내적 분열과 정체성의 탐색
안드레이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탈리아라는 타지에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도메니코는 자신의 신념과 믿음에 대해 확신하지만, 세상은 그를 미치광이로 취급합니다. 이 두 인물의 내적 분열은 서로의 거울이자 반영으로 작용하며,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상징합니다.
3. 영화의 미학과 상징성
1) 시각적 상징
물의 이미지: 타르콥스키는 물을 영적 정화와 내적 깊이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영화에서 물은 거울처럼 작동하며, 안드레이의 내면을 비추고 그의 혼란을 반영합니다.
불의 이미지: 도메니코의 희생 장면에서 불은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정화의 상징입니다. 이는 희생과 구원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폐허와 공간: 영화의 배경인 이탈리아의 고대 유적과 폐허는 인간 문명의 쇠퇴와 상실을 상징하며, 안드레이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2) 긴 롱테이크와 느린 리듬
타르콥스키는 롱테이크와 느린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관객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이 느린 흐름은 인물의 내면적 고뇌와 고향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강조합니다.
4. 결론: 영혼의 귀향을 갈망하며, 인간의 영혼과 구원에 대한 탐구
**《노스텔지아》**는 타르콥스키의 개인적 상실감과 영적 탐구가 녹아든 작품으로, 인간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영혼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안드레이는 도메니코의 희생적 행위를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신앙과 고향을 찾으려 하고, 이는 인간이 상실과 고독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구원을 찾는 여정을 상징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드레이는 고향의 집과 이탈리아의 폐허가 결합된 공간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로, 인간의 영적 고향을 향한 갈망과 구원의 열망을 나타냅니다.